짜장소녀 뿌까, 엽기토끼 마시마로, 이 둘의 공통점은? 바로 기획단계에서부터 캐릭터에 대한 이야기를 고려했다는 점이다.
사랑의 메시지 전달을 내세우며 저돌적으로 달려드는 여성 캐릭터 ‘뿌까‘와 사랑에는 무딘 남성캐릭터 ‘가루‘사이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는 사랑에 대한 신선한 트렌드로 인식되었고, 이러한 고유 스토리를 통해 중남미와 유럽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 수 있었다. 캐릭터 상품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마시마로 역시, 주인공 토끼에 얽힌 엽기적 스토리텔링이 그 원동력이었다.
내부 조직 커뮤니케이션이나 마케팅 등에 "스토리텔링"을 활용하는 기업들이 점점 늘고 있다. 극심한 경쟁 속에서 제품의 차별화된 특성을 내세우기 어렵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스토리"를 통해 감동과 재미를 전달하고 타 제품이 가지지 못하는 특별한 것을 부각시킨다.
‘정보의 홍수‘ 시대에서도 진정한 스토리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최근 PR업계에서도 스토리를 통해 대중과 고객사를 설득시키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스토리텔링의 힘
요즘에는 이야기라는 명칭보다 스토리텔링이라는 명칭을 더 많이 쓰는 듯하다. 스토리텔링이라는 용어가 보편화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스토리텔링은 어느 날 갑자기 튀어나온 개념이 아니다.
우리는 이야기에 익숙하다. 어린 시절 할아버지 할머니께 이야기를 해달라고 조르던 모습이 있고, 동화책을 읽어주시는 어머니 무릎 맡에서 이야기를 듣던 기억이 있다. 심지어 우리는 세상의 빛을 보기도 전에 어머니의 뱃속에서도 이야기를 들어왔다. 바로 ‘태교‘이다.
이런 이야기의 역사는 우리 윗 세대, 그 윗 세대에서부터 전해 내려왔다. 그렇기에 이야기를 즐겨하고 즐겨 듣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라고 주장하는 과학자들이 있다. 인지 심리학자인 로저 생크는 인간이 선천적으로 ‘스토리를 이해하도록 만들어졌다‘고 주장한다. 2001년 옥스퍼드 대 연구진은 인간 내 FOXP2라는 유전자에 내장된 이야기 능력을 찾아냈다. FOXP2는 단어를 정확하게 말할 때 필요한 물리적 신경학적 기능을 담당하고 복잡한 문장을 구성하는 능력과 관련이 있다.
이야기의 오랜 역사를 생각해볼 때, 세포단계에서부터 이야기를 구성하는 DNA를 가지고 있다는 과학자들의 주장은 꽤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기업과 소비자와 감정적인 유대관계를 형성하는 데 있어 스토리는 중요한 도구가 된다. 스토리텔링이 인간의 내재적 본능인 만큼, 살면서 들어온 스토리를 통해 세상을 이해하려는 경향이 크기 때문이다. 또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인간의 본성에 기대, 사람들과 브랜드의 교감을 유도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스토리텔링은 경제학적 관점에서도 큰 효용가치가 있다. 경제학자 맥클로스키는 ‘미국경제평론‘을 통해 미국국민총생산의 28%가 ‘상업적인 목적의 설득‘과 관련이 있고 설득에서 스토리텔링이 차지하는 비중을 액수로 환산하면 3조달러 이상이 된다고 추산한 바 있다.
덴마크 미래학자 롤프 옌센은 "꿈과 감성이 지배하는 21세기, 소비자는 상상력을 자극하는 스토리가 담긴 제품을 구매한다. 소비자의 감성을 자극하는 스토리텔링은 부를 창조하는 원동력이다"라고 예측했다.
스토리텔링의 중요성은 최근에 시작된 것이 아니다. 말보로맨 캠페인으로 유명한 레오 버넷은 "모든 제품에는 본래 고유한 드라마가 있다"며 최우선 과제는 그 이야기를 찾아 이용하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스토리텔링과 전략적 커뮤니케이션
효과적인 스토리텔링을 만들기 위해서는 핵심스토리를 만들어야 한다.
스토리텔링은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특정한 경험을 주고 영향을 미치는 접근방식이다. 특정한 목적을 지니고 있는 ‘전략적 커뮤니케이션‘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스토리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명확한 메시지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메시지는 기업에 대해 이렇게 생각해 주었으면 하는 일정한 방향성을 내포한다. 하여, 전략적 커뮤니케이션은 상대방을 설득하기 위한 커뮤니케이션이라고 말할 수 있다.
메시지를 스토리텔링 기법에 입혀 기업의 이미지와 브랜드를 잘 홍보한 기업으로는 미국의 애플사를 들 수 있다. 애플은 "획일적 디자인은 배격한다"라는 공격적인 메시지를 활용해 자사의 제품을 적극 활용하였다. 이는 제품 기획단계에서부터 PR에 이르기까지 기업 비전으로 추구되는 핵심가치를 메시지로 잘 활용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코카콜라 애틀란타 본사의 디지털 스토리텔링 전시장에서는 인디애나 주의 가정주부인 이리스가 코카콜라 병과 관련하여 2차 세계대전 중 아버지가 경험한 행운에 대해 쓴 이야기를 전시하고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코카콜라를 마시던 세대들의 향수를 자극하는 이 메시지는 코카콜라가 가진 오랜 역사와 브랜드 스토리를 전달하기에 손색이 없다.
미국의 노드스트롬 백화점은 고객 서비스에 대한 일화로 유명하다. 고객이 가져온 중고타이어를 그대로 접수하여 새 것으로 바꿔준 유명한 이야기는 고객 서비스에 철두철미한 모습을 보이는 일례라고 할 수 있다. 노드스트롬 백화점에 관련된 이야기의 메시지는 한결 같다. 이런 일화들은 고객들이 노드스트롬을 신뢰하고 재 구매하도록 유도하는 역할을 한다.
스토리텔링은 기업 특유의 차별적 정체성을 드러낸다. 스토리텔링의 중심에 기업이 추구하는 핵심 메세지가 녹아 있기 때문이다. 스토리텔링 기법을 통해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들의 감정적 유대감과 충성도가 높아진다. 특정 대상을 타깃으로 하여 일관된 메시지를 심는다는 점에서 스토리텔링은 전략적 커뮤니케이션의 강력한 도구이다.
핵심 메시지를 포착하고 이를 확산시킨다는 스토리텔링 기법은 PR의 근본과 맞닿아 있다. 미디컴 PR4팀의 배윤식 대리는 PR이 가지는 차별성을 ‘메시지의 확산‘에 두고 있다. 감성을 자극하는 이미지 위주의 광고보다 이성적 메시지로 소비자들을 설득시키는 것이 PR이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기업은 브랜드스토리를 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보다 다양한 채널을 복합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소비자가 브랜드에 접할 수 있는 접점을 다원화시킴으로써 브랜드 스토리 전파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기업 브랜드 스토리를 이야기하는 창구의 대부분이 "광고"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PR업계에서는 제품 홍보를 위한 기획서를 제출할 때, 핵심 메시지(Key message)를 반드시 설정한다. 핵심 메시지는 제품의 가장 뚜렷한 특징을 반영한 것이면서 소비자들에게 쉽게 각인시킬 수 있는 포인트이다.
꿈과 환상의 차이
스토리텔링 기법이 힘을 얻고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으나, 스토리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많은 이들이 간과하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바로 ‘갈등‘과 ‘진정성‘이라는 요소이다.
고전동화건 현대소설이건 스토리를 이용하는 모든 컨텐츠에는 반드시 ‘갈등‘이 내포되어 있다. 모든 것이 조화롭고 완벽해 보인다면 사람들은 스토리에 흥미를 잃어버린다. 갈등은 긴장감을 조성하여 사람들을 스토리에 몰입하게 하는 힘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조화와 균형을 추구한다. 일단 불균형이 발생하면 이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 한다. 그리고 갈등을 극복해나가는 과정에서 감정적 가치가 발생한다.
그렇기에 최근 삼성의 기업이미지 캠페인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또 하나의 가족, 삼성"이라는 큰 테마 아래 지난 캠페인은 이상적인 가족상을 보여주는 데 주력하였다. 하지만 5편까지 제작된 최근 캠페인은 가족 간의 갈등을 소재로 하고 있다. 소비자는 캠페인을 통해서 ‘우리 가족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에 동질감을 느끼고 스토리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이상적 가족이라고 하는 ‘환상‘을 버리고 화목한 가족을 만들어나가는 ‘꿈‘을 이야기하고자 한 삼성의 캠페인은 스토리텔링의 본질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갈등은 어디에서나 찾을 수 있는 소재이다. <스토리텔링의 기술>의 저자 클라우스 포그는 기업 스토리의 갈등은 무엇을 하지 않으려고 하는가를 설명하는 것이 더 쉽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애플의 "창조적 다양성"과 "개성 없는 획일성", 혹은 나이키의 "승리를 향한 집념"에 반하는 "2등에 안주하는 자세"를 들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기업에서 전달하는 광고나 메시지에는 갈등 요소가 존재하지 않는다. 홍보 담당자들은 자신의 제품을 결점이 없는 완벽한 존재로 그리기를 원한다. 스토리텔링 기법을 이용한 기업의 홍보, 혹은 마케팅이 실패하게 되는 요인은 바로 이것이다.
스토리텔링의 활용방안
2008년 5월 개최된 Bulldog Reporter 2008 Media Relations Summit에서는 PR업계에서도 스토리텔링 기법이 활용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돼 눈길을 끌었다. PR전문가가 되기 위해서 스토리텔러가 되는 것이 필수적인 수단(essential tool)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토리텔링은 광고 중심으로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전략적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서 스토리텔링을 활용하는 PR 사례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PR의 대표적 활동인 퍼블리시티의 효과 극대화를 위해 스토리텔링을 활용하기도 한다.
미디컴 PR 2팀의 김치한 AE는 기획보도자료를 쓸 때 스토리텔링 요소를 고려한다고 말한다. 팩트 중심의 기사는 딱딱한 느낌을 주는 반면, 스토리텔링 요소가 들어갈수록 기사의 흥미도가 올라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적인 제약이 따른다고도 말한다. 홍보대행사가 보도자료를 작성할 때, 기사에 대한 보이지 않는 포맷이 있고 사람들의 기사에 대한 고정관념도 있어 자유로운 스토리텔링에는 상당부분 어려움이 따를 수 밖에 없다는 것. 때문에 스토리텔링은 노련하고 경험이 많은 기획자들이 시도하기에 더 용이한 측면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토리텔링이 주는 전달 효과가 크기 때문에 퍼블리시티에서도 그 영역이 점차 넓어지고 있다.
웹2.0 트렌드와 함께 블로그를 통한 PR활동도 활발해졌는데, 블로거의 포스트는 스토리텔링을 쉽게 활용할 수 있는 수단이다. 파워블로거와 연계하여 제품의 특정 메세지를 노출시키도 한다. 2007년 한 대선 후보의 동행 블로그(http://beautifulroad.kr)를 운영한 경험이 있는 미디컴의 송민성 AE는 “블로그를 운영할 때는 타깃 공중이 누구인지, 목적이 무엇인지, 포지셔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송 AE는 블로그를 통한 스토리텔링의 매력을 "거르지 않은 메시지의 직접 전달"이라고 규정하고, “블로거이기에 할 수 있는 제품(혹은 브랜드)의 비하인드 스토리와 재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경계해야 할 것도 있다. 스토리 내 메시지 전달이 일방적인 방향성을 띄는 것은 주의해야 한다는 것. 송 AE는 “클라이언트가 요구하는 대로 갈등이 없는 컨텐츠를 생산하면서 블로그 스토리텔링의 맛이 반감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내비쳤다. 하지만 블로그는 PR활동의 한 채널로서 자리를 잡았다. 클라이언트가 제시한 최소한의 가이드라인 내에서 자유롭게 PR메시지를 전할 수 있도록 기업과 홍보대행사 모두 노력해야 한다고 송민성 AE는 이야기한다.
동영상을 이용한 스토리텔링도 꾸준히 늘고 있다. 기존 방송 프로그램 따라하기식 편집, 어색한 VJ식의 제작 등 패러디 방식의 UCC가 더 이상 어필하지 못하게 되자 본격적으로 온라인 동영상에 스토리텔링을 도입하려는 시도들이 증가하고 있다.
페이퍼워크 기법(영상기법의 한 종류)을 통해서 진정한 의미의 스토리텔링을 전하고 있는 커먼 크래프트(http://www.commoncraft.com/show)는 영어를 몰라도 눈에 보이는 것 만으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국내에서는 LG텔레콤의 OZ가 비슷한 형식의 온라인 동영상을 제작하였다. 한국관광공사의 경우 2007년 관광 스토리텔링 공모전을 개최하였는데, 동영상 스토리텔링 부문을 별도로 마련하였다.
앞으로의 PR업계의 스토리텔링은 개발 및 효과측정 면에서 더욱 정교화되고 과학화될 필요가 있다. STP(segment, targeting, positioning)에 맞는 스토리와 전략을 설정하고 이야기를 유포할 채널을 분류하고 결정해야 한다. 또한, 이야기 발생 진원지에 따라 스토리텔링의 구전 프로세스에 대해 연구할 필요가 있다.
뉴미디어팀
김재현AE